롬41) 2023-0724(월) / 김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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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현장]롬8:1~4
율법의 요구를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서 충족시키셨다. 이로써 나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옮겨진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 새로운 법 안에서 해방되었다.
[나의 반응]
율법은 실천이 목적이 아니다. 죄를 깨닫는 것이 목적이다(롬3:19-20). 이 상태는 사람에게 자신의 상태를 보게 하고, 구원을 갈망하게 한다. 자신의 상태는 무능이며,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인 그리스도의 공로와 순종과 사랑으로만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사람 앞에 우선 율법으로 나타나셔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거룩하고 선하고 의롭다는 것을 알게 하며, 그 앞에 서는 모든 존재는 자신의 의를 자랑할 수 없게 만든다.
율법은 완전무결한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으므로 그분께로 가려는 사람에게 그분 만큼이나 의로움을 요구하게 된다. 이것이 사람을 향한 율법의 요구이다. 그러나 죄인된 사람은 내 놓을 의가 전혀 없다. 황당하게도 이때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려는 경향(오해)을 가진다.
그러나 이것은 율법을 잘못 바라본 탓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이것이 인간이 만든 종교다. 오늘날 심지어 여러 교회 안에도 이런 종교의 형태가 깊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보잘것 없는 자신의 선을 가지고 나온들, 그것으로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으며, 그런 시도조차도 죄(교만)가 됨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의 만지심이 없는 우리의 자발적 선한 행동이 얼마나 교만인지, 이것이 얼마나 큰 죄된 행동인지!
안타깝게도 율법은 긍휼이 없다. 그래서 그 어떤 것으로도 율법 앞에 설 수 있는 무결한 존재는 없다. 율법은 너무 완전(하나님의 성품)해서 사람이 그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사람으로 하여금 정죄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이때 사람과 율법(하나님) 사이를 파고드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야 한다.
그 자가 시험하는 자요, 참소자인 마귀(사단)요, 죄와 사망의 법이다. 마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는 악한 존재다. 에덴동산에서 그랬고, 욥과 하나님 사이에도 파고들었으며, 광야의 예수님께도 그리했다.
나는 이런 상태의 내가 되어 하나님 앞에 서 보고, 마귀 앞에도 서 본다. 이때 하나님은 율법으로 서 계시고, 죄와 사망은 사단으로 내 앞에 서 있다. 오호라.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오직 지옥뿐이다.
어찌 내가 이 두 존재 앞에서 피할 길이 있겠는가? 이렇게 인간은 두 존재 앞에 완전히 무기력하다. 그렇다면 두 존재가 모두 나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의도를 품으셨고, 마귀는 악한 저주의 의도를 품었다. 사랑은 하나님의 의도이고 저주는 사단의 괴략이다. 하나님은 자복하는 죄인에게 자신의 사랑을 보이셨으니 구원이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유일한 구원의 빛이요 인류의 영원한 희망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마치 광야에 높이 들린 모세의 놋뱀과 같다. 에덴동산에서 뱀의 독을 마신 인류에게 들려 이를 통해 구원을 받으라 명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나타나신 이유다. 육의 몸으로 오셔서 사람의 죄를 대신 그 몸에 짊어지셨다. 죄인의 모든 죄와 소욕을 그분께로 옮기시고 사망을 십자가에 못박으셨다. 십자가는 사망이 사망한 곳이다.
사망이 장례를 치른 장례식장이다. 이때 우리의 죄가 그 십자가에 매달려 사망한 것이다. 그래서 나의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은 것이다. 예수님은 연약한 사람으로 이것을 참으셨으니 승리하셨다.
그 증거로 부활하셨다. 우리 옛사람은 십자가에서 죽고, 새사람은 부활로 인해 살았다. 실로 그분의 승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승리요, 이제 우리의 승리가 된다.
그분은 이기셨으나 이제 남은 것은 그분이 우리 안에서 이기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그것은 이기신 그분의 영이 이제 우리 안에 오셨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분이 우리와 하나가 된다니 이것은 너무나 큰 비밀이다. 신묘막측하고 고귀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분을 믿는 우리는 이제 그분으로 인하여 새로 태어났으며 거듭난 새 출발을 시작했다. 우리의 자연적인 존재는 여전히 희망이 없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았다 할지라도 옛날의 자신에게서 희망을 찾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에게서 그 어떤 의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성령, 곧 하나님의 영으로 인해 살아야 한다. 이것이 새로운 법이다. 내가 나를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 영으로 나를 사시는 것이다.
그동안 사단은 우리 몸에서 강했다. 그러나 더욱 강하신 승리의 영이 나에게 오셨고, 나는 믿음으로 그분을 왕으로 모시게 됐으며, 평생 섬기고자 작정을 했다.
사단은 여전히 내 몸, 즉 육신 안에서 기생하며 자신을 이긴 강한 영의 능력에 대항하지만 절대적으로 소용이 없다. 이것이 법이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다. 그는 발악하지만 성령 안에서 무너진다.
귀신이 쫓겨나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육을 좇지 않고, 영이요 생명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우리의 순종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승리를 보게 한다.
[아버지의 마음]
아들아. 너의 깨달음이 실제가 되기를 축복한다. 그것을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너를 창조한 나의 뜻이요, 나이니라. 그런 네가 나의 집이며, 나의 교회요, 성전이다.
나는 네 안에 들어가 살 것이다.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서 그렇게 살게 될 것이다. 영원히 말이다. 사랑한다.
[주님과 동행하기]
아버지. 영원한 소망되심을 찬양합니다. 그 안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연약한 몸입니다. 건강하도록 붙잡아 주옵소서.
두통으로 여러날을 힘들어 했는데 오늘 평생 처음 고혈압 판정을 받았습니다. 지혜롭게 관리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회복을 주옵소서. 아버지를 의지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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