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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답이다. 2022. 12. 17. 04:30

22년12월12일(월)12월16일(금)

창세기: 32장13절-33장11절
♤자신의 호의를 입증하려고 야곱은 에서에게 다양한 가축 떼를 예물로 550마리나 선물로 보낸다.<32:13>

주의 종 야곱 자기 주에서 (주인의 종 야곱, 나의 주인에서)."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고 하나님이 이전에 말씀하신 것과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27:29)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야곱이 이와 같이 공손하게 말한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18절)

얍복 나루(22절). 야곱은 이제 얍복 강에 이르렀다. 얍복 강은 요단 골짜기 서쪽 방향으로 흐르며, 사해와 북쪽으로 약 39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23절)

야곱이 브니엘에서 하나님을 만남 이 단락에서는 한밤중에 하나님과 야곱이 만난 사건이 소개된다.

이 놀라운 만남을 통해서, 비로소 야곱은 온전히 변화된다. '야곱'이라는 이름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이 이 점을 입증해 준다.

어떤 사람(하나님)이 씨름하다가 갑자기 예상하지 못했던 한 사람이 나타난다. 그는 밤새도록 야곱과 씨름을 한다.

이 씨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야곱은 자신과 씨름했던 대상이 바로 하나님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30절).

이전에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다(18:1~15)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사건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절에서 히브리어 표현에는 흥미로운 언어유희가 반영되어 있다. 곧 하나님은 야곱(히 '야 야콥')과 씨름하셨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더라 (엉덩이뼈가 어긋나게 되었다). 야곱이 엉덩이뼈를 다친 것은 상대방의 힘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또한 야곱이 그를 이기려고 모든 힘을 다했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32:25)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심지어 야곱의 엉덩이뼈가 어긋날 정도가 되었지만, 야곱은 상대방을 좀처럼 놓아주려고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하나님에게 복을 받으려고, 야곱은 필사적으로 매달린다.(26절)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전후 문맥을 살펴볼 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그가 하나님과 겨루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또 다른 가능한 해석은 '하나님이 싸우다.'이다. 하지만 이 해석은 이 문맥에 적합하지 않다. (28절)

호세아12:3~4절 말씀에 보면 이 사건에 대해서 언급한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는 것은 야곱이 다른 사람들과 싸우는 그의 인생 여정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참조, 25:22)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마침내 야곱은 하나님에 의해서 복을 받는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지난 세월 동안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은 야곱을 변화시켰다. 아버지의 하나님이 이제 야곱 자신의 하나님이 되었다 (32:9. 참조, 28:21에 대한 해설).

(여기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성경 전체에서 처음으로 언급된다. 성경 이외의 문헌에서는 주전 13세기 무렵 이집트의 파라오 메르넵타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 비문'에서 그 명칭이 처음으로 나타난다.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히브리어에서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을 뜻한다.

이에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야곱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나중에 모세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해 달라고 간청한 다(출 33:18). (창.32:30)

그러자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신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 33:20).

이 대화에 근거해서 살펴볼 때,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것은 매우 특별한 예외이거나, 아니면 '대면하여'라는 말은 비유적인 표현으로서 하나님과 대단히 친밀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

이에 출 33:11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 두 경우에, 이 표현은 하나님과 사람의 매우 친밀한 만남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또는 이 표현은 하나님의 얼굴을 문자 그대로 보았다는 것을 가리킨다기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나타난 것을 묘사하는 것일 수 있다.

브니엘은 브누 엘로 표기되기도 한다 (참조, 삿 8:8~9).(31)

에서가 자기를 향해서 오고 있는 것을 보자, 야곱은 자신의 아내들과 자식들을 자신이 판단하기에 중요한 순서대로 배열시킨다.

야곱은 라헬과 요셉을 가장 영예스럽고 안전한 위치에 있게 한다. 여기서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서 오직 요셉만 언급된다(2절), 나중에 창세기에서 야곱이 요셉을 특별히 사랑한다는 주제가 다루어진다(참조, 37장).(33:1~3)

야곱은 천천히에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일곱 번이나 땅에 엎드리며, 야곱은 에서에게 절을 한다. 자신이 에서에게 복종한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의도에서, 야곱은 분명히 이와 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특별히 이전에 여호와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라고 말씀하신 것을 고려할 때, 야곱의 이 행위는 주목할 만하다. 소모됩니다.(33:3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아무런 거리낌 없이,에서는 야곱을 껴안고 입을 맞춘다.

이러한 모습은에서 야곱에게 아무런 적대감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드러내 준다.(4절)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야곱이 에서에게 선물로 보내는 다양한 가축의 떼를 가리킨다(참조, 32:13~21).(33:8)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야곱은 자신이 이전에 하나님을 만난 것과 지금 에서를 만난 것을 대조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이 야곱을 맞아주신 것과 같이,에서는 야곱에게 분에 넘치는 호의를 베푼다는 것이다.(10절)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여기서 야곱이 에서에게 주는 선물은 가축이다. 이전에 야곱은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빼앗았다.

지금 야곱은 이 특별한 복을 에서에게 다시 돌려줄 수 없다.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베푸신 복 가운데서 장자권 대신에 정선드려 값진것으로 갚으려고 한다. (33:11절)

'말씀묵상'을 통해 나의 주권을 내려놓겠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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