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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

믿음으로 세워진 건축

예수가 답이다. 2023. 8. 23. 08:43

롬63) 2023-0823(수) / 김재현 목사


[말씀의 현장]롬11:1~6
아합 왕과 악독한 이세벨에게서 도망친 엘리야는 북왕국을 떠나 국경선 브엘세바을 거쳐 광야길 사십일을 달려 호렙산에 도착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왜 여기에 있냐고 묻자 엘리야는 "이제 나 홀로 남았습니다"라며 좌절하는 마음으로 답했다(왕상19:10). 그러나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칠 천명을 남겨두었다"고 답하신다(왕상19:18).

하나님의 구원과 언약은 여기서 끝이 아니며 충분히 남아있으니 좌절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우선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으로서 구원받은 자임을 말했다. 이어서 구약의 엘리야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꺼내며 이스라엘의 구원이 좌절된 것이 아님을 설명한다.

비록 이스라엘이 완악하여져서 구원의 축복이 이방으로 넘어갔지만 이후 이스라엘 중에도 구원받을 자들이 예비되었다. 이들도 이방의 구원의 원리처럼 행위가 아닌 믿음의 법으로 그 은혜를 보게 될 것이다.

[나의 반응]
LH사건이 생각난다. 뼈대가 되는 철골이 빠져서 '순살아파트'라는 치명적인 별명을 얻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며칠 전 아들이 보여준 사진을 보고 한바탕 웃었다.

아파트 입주를 축하하는 현수막 사진인데 그 곳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뼈대있는 아파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코믹같은 일이었지만 실화였고, 나라로 본다면 우픈(우습고 슬픈)일이 아닐 수 없다.

든든한 지반일수록 건축은 든든하게 세워진다. 뼈대가 강할 수록 건물은 오래간다. 지반과 뼈대가 강하기로는 구약의 역사를 통해 훈련받은 이스라엘 민족만한 사람들이 없다. 그들의 신앙과 체험은 이렇게 든든히 다져졌다.

그러나 건축을 할 수 없었다. 결정적인 재료인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땅만 덩그러니 있는 그들의 건축현장은 사계절 찬바람만 부는 땅이다. 희망이 없어보이고 누구도 제 값을 주고 사지 않는 외면하는 땅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하신다. 그들의 구원을 바울을 통해 예견하셨으니 이스라엘로 친다면 억울함이 해소되어 제대로 된 건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 늦은들 건축주의 뜻이라면 순응하고 받아들어야지. 나중 된 자라 한들 은혜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는 마음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먼저 받은 복음에 감사해서다.

그렇다고 그들보다 잘난게 없다. 오히려 그들이 예수를 믿는다면 든든한 지반과 뼈대로 인해 복음을 더 귀하게 여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자만하지 말자. 그들과 같은 역사는 없지만 그에 버금가는 깊이를 보자.

하나님의 그 한량없는 은혜와 말씀과 생명을 보는 눈을 열자. 아버지, 제게 그런 사랑을 베풀어 주옵소서.

[아버지의 마음]
아침에 문이 열리면 저녁엔 당연히 그 문을 닫기 마련이다. 해 뜨는 아침이 있으니 노을 지는 저녁처럼 말이다. 인생도 그렇고, 내가 정한 뜻도 그렇다. 시작부터 끝을 정하고 창조했다(사46:10).

그 끝은 나의 원함이고 내가 이루는 일이다. 이 역사의 끝에서 사랑하는 아들들을 얻을 것이다. 창조되었지만 창조되지 않은 것 같은, 내가 피를 흘려 직접 낳은 나의 생명들을 거둘 것이다.

그들은 나를 아버지라 부른다. 더 이상 창조물이 아닌 그보다 더 고귀한 자녀로 부름을 받을 것이다. 그들 또한 나를 창조주를 뛰어 넘어 창조주가 아닌 영원한 사랑의 가족이요, 아버지로 부를 것이다.

역사의 시작에 한 민족이 부름을 받았다면 그 끝은 모든 민족이다. 민족과 열방을 향해 구별없이 주어진 은혜라면 받은 그들은 끊을 수 없는 나의 영원한 사랑이다.

[주님과 동행하기]
아버지. 언제 부르셨든지 아버지는 영원하시며 완전하십니다. 선하신 사랑이시고 영원한 은혜입니다.

그것을 제 속에 인정되기까지 많은 연단의 시간과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지나와 보면 그 아픈 과정은 영원한 은혜에 비해 가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아버지의 사랑이 삶 속에 흔적으로 남게 하옵소서. 그 증거가 영원히 기념될만한 아버지와 저의 관계가 됨을 기념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신 사랑의 증거가 이미 영원한 증거인 것 처럼 말입니다. 지금도 오늘을 삽니다. 순간순간 동행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소중한 만남들을 허락하셨습니다. 만나고 기도하며 교제하는 모든 이들 속에 살아계신 아버지의 은혜가 함께 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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