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03월06일(월)-03월10일(금)

마가.14장32절-14장72절
베드로는 성경 인물 중에 급하고, 다혈질적이고, 엄벙덤벙한 성격을 가진 사람하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십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라는 고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고기를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의 역사적인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그 만남이 베드로에게 끼친 영향은 무엇일까요? 베드로는 어떻게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되었으며, 축복의 통로요, 교회를 세우는 반석이자 천국 열쇠를 소유한 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말씀 요약=>
예수님이 가신 이 순종의 길 위엔 무엇이 있었을까?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다던 제자들은 다 달아나버리고(막 14:50), 수제자인 베드로는 예수님 뒤꽁무니를 쫓아오긴 하지만(막 14:54) 자기 신변의 위협을 느끼자 예수님을 모른다고 잡아뗀다.(막 14:66, 70, 71)
예수님은 혼자 남으셨다. 의회로 끌려가셔서 침 뱉음을 당하고 얻어맞고 놀림을 받으셨다.(막 14:65) 빌라도에게 넘겨지시고 신문을 받으시고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대제사장의 선동에 따른 무리의 요구와 대중의 지지를 원하는 빌라도의 묵인 속에서(막 14:6~15)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선고 받으신다.(막 15:15)
여기서 뜬금없는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맘에 들어 하셨을까? 내 맘에 든다면 그것은 순종이 아니다. 우리가 순종을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요 내 맘에 들지 않지만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다 아시는 예수님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예수님은 한걸음 씩 나아가신 것이다. 자신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리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순종의 길을 걸어가신 것이다 . 아멘
●본문 해설=>
14:32=>겟세마네는 예루살렘 동쪽 1.2km 지점, 곧 스데반 문에서기드론 시내를 건너, 감람산 서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겟세마네" 란 히브리어 가트쉐마니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그문자적 의미는 "기름짜는 곳" 또는 "기름짜는틀" 이¹다.
또한 감람산에는 감람나무숲이 우거져 있었는데, 그곳에 감람유를 짜는 장소가 있어서 그렇게 불렸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일찍이 40일간의금식 기도로 그의 공생애 활동을 시작하였다(1:12, 13)
그의 생애를 통하여 늘 기도하였으며(6:46;마 14:23), 이제 그의 생애를 마무리짓는 시점에서도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음으로써 기도의 본을
실로 그들은 예수의 영광의 증인이자,고난의 산증인으로서 예수의 마지막 기도 현장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공교롭게도 이세 제자들은 예수께서 마시는 죽음의 잔을 함께 마시겠다고 장담한 인물들이었다.
14:34=>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계속해서 '심히' 라는 강조적 수식어를 사용함로써 예수의 인간적 고통의 처절함을 묘사고 있다.
예수의 이러한 고통의 호소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육체적 죽음에 직면하여 두려움과 슬픔을 느꼈다는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모든 요소를 갖고 있는 완전한 사람으로 땅에 오셨음을 말해준다.
14:36=> 아바 아버지 '아바'는 아람어로 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를때 사용하는 칭호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칭호를 지상의 아버지에 대해서만 사용했고 하늘의 아버지, 즉 하나님에 대해서는 불경 하다고 하여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런 칭호로 하나님을 부른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자 그분과 가장 친근한존재였기 때문이다.
14:44=> 예수를 파는 자가 군호를 짜 여기서 '구호' 란 '암호' 또는 '신호' 란 뜻으로 본 상황에서는 '입맞춤' 이었다.
이로 보아 당시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 온 무리들 가운데 일부 사람들이 예수의 모습을 몰랐거나, 혹은 그때가 밤중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를 정확히 알아볼 수 없는 상황이라 그를 익히 알고 있던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덧붙여 그들이 체포하고자 하는 자는 예수의 일행이 아니라 예수 한 분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입맞추는 자, 친구나 사제 간에 애정의 표시이자 인사로 하는 입맞춤이(롬 16:6;벧전 5:14), 여기서는 배신의 신호로 사용되고 있다.
유다의 배반이 가증스럽고 비열할 뿐만 아니라 매우 완고한 결의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마 유다는 예수께서 초월적인 능력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유다는 경계하여 실수 없이 예수를 체포하라고 다짐하여 말해주었을 것이다.
14:50=> 제자들이... 도망하니라 27절에서 예언했던 것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과거에 목숨을 걸고 맹세했던 제자들이었건만(31절),
이에 예수께서 무기력하게 잡히는 것을 보자 모두 다 도망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인간의 자기 신뢰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제자들은 이러한 실패를 통하여 인간의 의지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계기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후에 제자들이 성령 강림을 체험하고 난 후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을 때(행 2장) 이곳에서의 실패는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라 볼수있다.
14:51=> 한 청년이베 홑이불을 두르고, 마가만의 독특한 기록으로 전후의 문맥과 상관없는 삽화적 묘사라고 할 수 있다.
마가가 이 삽화를 수록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제자들을 위시한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홀로 두고 모두 도망갔다.
14: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도망하니라. 너무나 다급한 나머지 옷을 벗어 버리고 알몸으로 도망치는 한 청년의 모습은 제자들의 도망하는 비참함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이 청년은 베 홑이 불만을 입고 있었던 것이고(51절), 그것은 적어도 급작스럽게, 아니면 잠결에 이 사건 현장으로 온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예수와 함께 마지막 만찬을 들고 겟세마네까지 동행한 열한 제자들 가운데 겉옷 차림으로, 그것도 보통의 유대인들은 입을 수 없었던 베 홑이불을 입고 있을 사람은 없었으며, 따라서 그 주인공은 열 한 제자 중에 들지 않는 또 다른 제자였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14:53=>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 마26:57에 의하면 이들이 모인 곳은 현직 대제사장가야바의 집이었고, 요 18:12-14에 의하면 예수께서 가야바에게 끌려가기 전에 먼저 전직 대제사장인 안나스에게 끌려가 예비 심문을 받은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안나스와 가야바는 장인과 사위의 관계였고 현직에서 물러난 안나스가 당시에도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14:54=> 베드로가 멀찍이 좋아 불을 쬐더라 상황에서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를 버리고 도망했던 베드로는 자신의 맹세(31절)에 대한 책임과 수제자로서 스승의 신변에 대한 염려 때문에 예수가 체포되어 가는 길을 멀리서 뒤좇았을 것이다.
마가는 이 베드로의 뒤좋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뒤좋음, 즉 예수의 고난에동참하기 위한 뒤좋음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하기 위해 '멀찍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다.
여하튼 베드로는 멀리서나마 뒤따라와 대제사장의집 뜰 안까지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대제사장의집을 아무나 아무런 제지 없이 들어갈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14:57=> 어떤 사람들이 거짓 증거하여 예수에게는 무죄를 변호할 수 있는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거짓 증인들의 고발만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마가는 구체적인 설명없이 적대자들의 고발이 '거짓 증거' 라고 단정지어 말한다. 마가는 그 이유를 다음의 사실에서 찾았을 것이다. ①단 두 사람의 증언도 일치한 바가 없었다. ② 아마 마가는 이러한 과정을 메시야의 고난을 암시한 성경 예언이 성취되는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이에 거짓 증인들이 독기를 뿜으며 일어났습니다 (공동번역.시27:12). "그 악한 증인들이 일어나 알지도 못하는 일을 캐물으며 (공동번역 시 35:11). 라고 기록하였다. 이에 예수를 죽이기 위해 거짓 증언을 하게 하는 산헤드린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악인들의 모습이었다.
14:69=> 이 사람은 그 당이라. 원문을 보면 두번째 베드로에게 접근한 비자는 첫번째의 비자(66절)와 동일인으로 묘사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마26:71 에는 분명 또다른 비자로, 또한 눅 22:58에는 제 3의 남자로 묘사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본 상황의 모순점이기보다 베드로에게 의혹을 품고 접근한 자들이 여럿이었음을 시사해 주는 표현이라 본다. 여하튼 아래 뜰까지 좋아온 그 여종은 이번엔 곁에 있는 사람들(아마 성전 수비대나 대제사장의 휘하에 있는 장성들이었을 것이다)에게 베드로가 예수와 '한패' 라고 고발한다. 아마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려는 베드로의 태도에 더 수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14:70 "또 부인하더라" 에서는 미완료 시제로서 '부인하기를 거듭 지속했다'는 뜻이다. 이는 베드로의 부정 의지가 얼마나 컸던가를 암시해준다.
마태에 기록에 의하면(마 26:72), 베드로는 두번째 추궁에 대해 맹세까지 하면서 예수와의 관계를 부인하고 있다. 조금 후에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 했다.
14:72=> "닭이 곧 두번째 울더라". 본서에서는 첫번째닭 울음에 대한 언급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요한에 의하면 두번째 질문 뒤에 닭이 울었다고 하는데, 아마 그것이 첫번째 울음이었을 것이다(요 18:27).
'기억되어', 베드로는 두번째 닭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예수께서 예언하셨던 말씀(30절)이 생각났다. 누가에 의하면 닭 울음소리가들리는 동시에 예수의 시선을 받고 그분의 말씀이 생각났다고 한다(눅22:61).
이에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와 더불어 철저한 실패자가 되어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즉 예수와 함께 죽을지언정부인하지 않겠다던 자신만만한 모습은 간데없고, 순간적인 위험을 모면하려고 스승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부정했던 자신의 죄인된 모습을발견한 것이다.
여기서는 문맥상 단순히 회상하고 주저앉는 차원을 넘어 머리를 벽에 부딪히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심히 울었다는 뜻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볼수있다.
이 회개로 말미암아 그는 죄 사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형제들을 인도하며 굳게 세우는 은혜를 받았다(눅.22:32)=(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신 내용은, 그가 아주 떨어지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후에 베드로는 과연 이 기도와 같이 되었다.)
●요한.18장19:24=>
대제사장은 예수께 그의 제자들과 그의 가르침에 관하여 물었다.
예수님은 나는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었다. 예수님은 언제나 모든 유대 사람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고, 아무것도 숨어서 말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나에게 묻냐며 무슨 말을 하였는지를, 들은 사람들에게 물어 보라. 내가 말한 것을 그들이 알고 있다며 질책했다.
이에 집행관은 대제사장에게 그게 무슨 대답이냐? 하면서, 손바닥으로 예수를 때렸다.
이에 예수님은 내가 한 말에 잘못이 있으면, 잘못되었다는 증거를 대라하시며. 그러나 내가 한 말이 옳다면, 어찌하여 나를 때리냐고 행변했다
그러나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는 예수를 묶은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보냈다.
♤나의 머리(생각) 속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소망을 마음 판에 새기게 하소서.아멘
"말씀묵상"을 통해 "오직 주님"만의 영광되시며 나의 주권을 내려놓겠나이다.아멘
'하나님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자가상의 종 (0) | 2023.03.13 |
---|---|
하나님의 심장 (1) | 2023.03.12 |
베드로의 회개 (12) | 2023.03.10 |
예수께서 사형 언도 (0) | 2023.03.09 |
대제사장이 예수를 신문하다 (0) | 2023.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