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말씀과 함께
(22년09월15일.목요일)
말씀의현장=(묵상말씀:창:21장14절-21절)
이스마엘을 떠나보내는 아비에게는 천금 같은 위로가 아닐 수없었다.
다음날 아침, 아브라함은 먹을 것과 물이 가득 든 가죽부대를 챙겨 하갈의 어깨에 메어주고는 아들과 함께 장막을 떠나게 했다.
아브라함은 무겁게 입을 열었고, 하갈은 이미 각오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뚝뚝 눈물만 흘렸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아들아, 어딜 가더라도 나의 아들로 당당하게 살아가거라." 라고 껴안아 사랑이 담긴 어조로 슬픔을 표현했다.
이에 이스마엘은 어머니 하갈과 달리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서 이스마엘은"아버지, 도대체 왜 우리가 떠나야 합니까?" 라며 분노의 슬픔을 내비쳤다.
이때 떠나는 하갈은 아들과 함께 고향 이집트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기후 조건상 자주 길이 바뀌는 광야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이때 광야를 헤매는 동안 가죽부대에 들어있던 물도 다 떨어졌다. 햇볕은 종일 뜨겁게 내리쬐었고 갈증은 점점 심해졌다. 목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이러다간 꼼짝없이 광야에서 죽고 말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갈은 불볕더위를 피해 덤불 그늘에 아들을 놓아두었다.
어디선가 물을 찾아야 했다. 그녀는 아들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비척비척 걸어가다가털썩 주저앉았다.
아들과는 50m 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갈증으로 목이 타들어 가는지 열일곱 살의 이스마엘은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그러나 갈증도 갈증이지만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분노가 억울한 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하갈은 아들의 울음소리에 더욱 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하갈 역시 두려움과 억울함을 이기지 못해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이때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갈아, 무슨 일이냐?" 라며 불렀다
"하갈아, 두려워하지 마라. 하나님이 네 아들의 우는 소리를 들으셨느니라."라며 안심 시켰다.
하갈은 그 즉시 알아차렸다.
어떻게든 이스마엘에게 어서 빨리 물을 가져다주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스마엘은 덤불 그늘에서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이스마엘은 정신없이 물을 받아마셨다. 이어 하갈도 물을 마시고 기운을 차렸다.
기운을 차리자 길을 떠나 그리고 광야 어딘가에 둘은 무사히 정착했다.
이스마엘은 비록 서자이지만 어디까지나 아브라함의 아들인지라 하나님이 그를 보살펴주셨다.
이스마엘은 어른이 되어 활 쏘는 사람이 되었다.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용사가 된 것이다.
이스마엘이 성장하여 바란 광야에서 거주하게 되었을 때, 그의 어미하갈이 이집트 처녀를 데려와 짝을 지어 주었다.
나의 반응=
하나님께서 눈을 밝혀 주지 않으시면 황량한 내 인생의 광야에서 사막 모래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의 눈물, 나의 기도를 보시고 내 눈을 밝혀 열어 주시면 불모지 사막 한복판에서 샘물을 발견하며 사막에서도 꽃을 보고 열려진 길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어려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 눈이 열리지 못하고 닫혀 있어서 사막 모래밖에는 달리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이 문제이다.
이는 죽는 것밖에 달리 길이 없었던 하갈과 이스마엘 모자가 방성대곡하며 울었던 그 눈, 그 눈물방울 속에 거친 광야의 모래가 아닌 샘물이 비쳐지고 살길을 찾은 은혜가 내 인생과 삶 가운데도 경험되어지기를 이 시간 간절히 소원합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남편.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과정에서 나는 눈물이 난다. 얼마나 서러웠을까 하는 마음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별이 얼마나 마음이 아파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한참 눈물을 머금고 이어 묵상을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날 이 분노가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말씀의 따르면 "해가 질 때까지 분을 품지 말라"는 메시지가 다시한번 나의 마음에 새겨야 하겠다.
그래서 해지기전에 나의 마음에 담앗던 모든 좌악을 주님앞에 회개하고.사람앞에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빌겠습니다.
아버지의 마음=
사랑하는 아들아
갈등의 요지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는 사라의 요구 때문이다. 근심 가운데 서 있는 아브라함을 향하여 나 여호와는 이스마엘을 포기하라고 명했단다.
이에 이스마엘의 생명은 경히 여기고 이삭의 생명만 귀하게 여긴 것은 아니다.
나 여호와는 성경에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씨라 부를 것이라는 말씀에 선택받은 자의 우월성이나 특권을 말한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의 열매인 이삭을 소중하게 여기신 것은 그에게 먼 훗날 예수그리스도가 예표로 중요한 사명 때문이란다.아들아~
주님과 동행하기=
주님! 하갈과 이스마엘 모자의 눈물을 보시고 눈을 밝히사 광야 사막의 모래 대신 샘물을 보게 하신 은혜가 오늘 광야 같은 내 인생길 사막 모래 언덕을 지나는 내 눈에도 비쳐지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과 함께 말씀과 함께 성령충만으로 세상을 향해 나가게 하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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