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20) 2023-0623(금) / 김재현 목사
[말씀의 현장]롬4:6~9
아브라함의 믿음과 다윗의 믿음을 의롭게 정하셨고, 복으로 정하셨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믿음과 같이 할례자도 무할례자도 어떤 누구도 상관없이 같은 믿음을 가진다면 그것을 의로 여기신다.
태생의 특별함, 또는 행위의 거룩함으로 되지 않는다.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의롭다 칭하신다.
[나의 반응]
묵상 중에 유대 그리스도인이 되어본다. 자주 이방 그리스도인들의 눈초리가 불편하다. 차라리 구약의 말씀을 받지 말았어야 했을까?
왜 믿음의 법 때문에 도리어 그들의 조롱을 받아야 할까? 우리 조상들이 모두 완악한 것은 아니었다. 순종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들을 통해 구약이 기록됐다. 이방인들도 이 수고를 알아줘야 한다. 되려 감사해야 하지 않나? 교만했던 역사를 인정한다.
그러나 보석과 같은 믿음이 연명하여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서시도록 도우지 않았던가. 바라기는 유대인이라 하여 특별한 믿음을 요구하거나, 교만한 역사로 인해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한다면 되려 묻고 싶다.
당신들의 나음은 무엇이냐고. 역사를 내려 놓는다. 잊어버리겠다는 것이 아니다. 선민으로써의 혜택과 기대를 내려 놓는다는 것이다. 다만 기대할 것은 이방인들과 동일한 은혜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진정한 복은 이곳에 있으니 말이다. 이로써 복음은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이방인들이 유대인을,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 없는 진리임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마음]
아들아. 네가 가진 부담을 나도 느낀다. 누군가가 문을 열어야 하니 역사의 순서상 선민은 필요하지만 결국 먼저와 나중은 중요하지 않단다.
은혜를 위한 일이라면 누구든지 내 앞에 무자격으로 나올 수 있게 됐으니 그래서 만민을 향한 복인게지. 간혹 이것을 누리는 겸손한 유대그리스도인들은 본다.
그들은 어느 이방 그리스도인들보다 믿음이 좋다. 왜일까? 이미 학습한 율법의 존재 이유가 그리스도를 더 확실히 조명하기 때문이란다.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를 기뻐하는 아들아. 일어나라 오늘도 함께 가자. 사랑하고 축복한다.
[주님과 동행하기]
아버지. 더 깊이, 더 넓게, 더 높게 아버지를 알고 싶습니다. 사는 날 동안 아버지를 잘 설명하고 싶습니다. 알리고 싶습니다. 제 속에 남아있는 옛사람의 저항과 오늘도 싸울 때 내 안에 승리를 주옵소서.
종말의 날까지, 주신 은혜가 세상을 채울 때까지 주님과 함께 말씀과 함께 동행하게 하옵소서. 주일 설교를 준비합니다. 지혜를 주옵소서. 입술에 능을 주옵소서. 동역자들에게도 은혜를 주옵소서. 사랑합니다. 아버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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