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12월 05일(월) 12월 09일(금)
창세기: 31장36절-32장12절
♤야곱은 자신이 드라빔을 훔쳐 갔다는 라반의 근거 없는 주장에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면서 야곱은 자신이 라반의 가축을 매우 조심스럽게, 또한 열심히 돌보았다는 것을 힘주어 말한다.
비록 라반은 자기를 혹독하게 부렸지만, 20년간 라반을 위해서 부지런히 일하면서,야곱은 자신이 라반에게 단 한 번도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31:36~42>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 여기서 '이삭이 경외하는 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문자적으로 '이삭의 경외(두려움)' 이다. '경외'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표현이다.(42)
이에 야곱이 이와 같이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라반은 자신의 두 딸들 및 그녀들이 낳은 자녀들과 또한 양 떼가 모두 자신의 소유라고 터 무니 없는 말로 주장한다 (43절).
그러고 나서 자신의 체면을 살리기 위한 행위로서, 라반은 야곱에게 자기와 계약을 맺자고 제안한다 (44절).
이 언약에 근거해서, 라반은 자기의 딸들과 외손자 및 외손녀의 신변 안전을 보장하려는 것이다고 주장한다.(50)
여기서 두 '증거들'이 세워진다. 야곱이 한 증거물을 세우고, 또한 야곱의 친족이 또 하나의 증거물을 세운다.
야곱은 기둥을 세우기 위해서 돌 하나를 사용한다(45절).
이것은 이전에 야곱이 벧엘에서 세웠던 돌기둥 (28:18, 22)과 비슷하다. 야곱의 형제들(친족)은 돌(들)로 무은 신들을 나타내는 돌무더기 를 만든다 (46절).
이 두 증거물을 세우는 것은 야곱과 라반 사이의 맹세가 진지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나아가 이 두 증거물은 나름대로 야곱과 라반이 섬기는 대상을 반영한다. 야곱은 한 개의 돌로 세웠지만, 반면에 라반은 돌무더기를 만들었다.
곧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야곱의 믿음과 많은 신들을 믿는 라반의 신앙이 서로 두드러지게 대조된다.
고대 근동의 조약 내용에는 신들이 증인들로서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야곱과 라반 사이의 언약에서도 유일하신 하나님 또는 신들이 증인들의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야곱은 유일신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타협하려고 하지 않았다. 따라서 유일신을 상징하는 돌기둥과 많은 신들을 나타내는 돌무더기가 세워졌다.<31:45~46>
아람어 여갈사하두다 (예가르 사하두타')와 히브리어 갈르엣('에드')은 모두 '증거의 무더기'를 뜻한다.
한편 미스바(히, '미츠파')는 '망대'를 가리킨다. 또한 미스바는 얍복 강 북부에 있는 거주지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미스바는 입다의 고향이다(삿 11:11). 나아가 이스라엘 지파와 유다지파의 경계에 위치한 중요한 도시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도시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13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참조, 삿 20장).<31:47~49>
야곱이 라반과 에서를 만나는 사건들 사이에 위치한 것으로서 이 절들은 매우 흥미롭고 신비로운 막간극을 보여 준다.
이에 하나님의 사자들 (1절)이라는 표현은 이전에 벧엘에서 야곱이 꿈을 꾼 사건(28:12)을 연상시켜 준다.
구약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사자들' (복수)이라는 표현은 오직 이 두 절들에서만 나타난다.
또한 하나님의 군대(또는 진영, 2절)는 야곱이 이전에 벧엘을 '하나님의 집' (28:17)이라고 부른 것과 평행을 이룬다.
집은 한곳에 있지만, 군대의 이동을 따라서 진영은 이곳저곳에 세워진다. 따라서 '하나님의 군대' 또는 '진영'이라는 야곱의 말은 하나님이 자신을 가나안 땅으로 안전하게 돌아가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천사들을 보내셨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그리고 마하나임(2절)은 '두 진영'을 뜻한다. 아마도 하나님의 진영과 야곱의 진영을 가리킬 것이다. 나아가 '두진영'이라는 모티프는 7절과 10절에서도 나타난다.<32:1~2>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이 절에서 '사자들'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명사 '말아킴'은 1절에서 사용된 단어와 똑같다.
세일 땅에 동들(또는 벌판, 3절).이 벌판은 가나안 땅의 동쪽에 트란스요르단 지역에 있다.
이에 창 36:6~8절 말씀에, 야곱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간 후에, 에서는 세일 산지에 정착한다 고 기록했다.
이에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오기 이전에, 에서는 아버지 이삭을 떠나서 이미 세일 땅으로 가서, 그곳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 당시에 이삭은 헤브론 근처 마므레에 살고 있었다(참조, 35:27).
한편 세일(히, '세이르')은 '털이 많은'이라는 단어 (히, '사이르)를 머릿속에 떠올리게 하며, 또한 ‘에돔'은 '붉은'이라는 단어를 연상시켜 준다(참조, 25:25).
여기서 야곱이 에서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어조는 매우 공손하다.
4~5절에서, 야곱은 에서를 두 번이나 내 '주'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 야곱은 형 에서에게 눈에 들기를(은혜) 바란다(5절).<32:3~5>
에서가 사백 명이라는 규모의 사람들은 야곱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있다.
이에 창세기 저자의 모세는 14장에서 아브라함이 삼백십팔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네 왕들을 쫓아가서, 그들과 싸움을 해서 이겼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6절)
그러나 에서를 두려워해서, 야곱은 자기의 가족과 소유를 두 떼로 나눈다(7절).
그러나 인간적인 관점에서 판단할 때, 야곱의 이와 같은 조치는 이해할만할 것이다.
하지만 이 행위는 하나님이 자기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야곱이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32:1~2절 말씀에서 하나님이 야곱을 보호하시려고 자신의 사자들을 보냈다는 것과 관련하여, '두 군대 (진영)'의 모티프가 이미 소개되었다.<32:7~8>
이에 에서를 두려워하는 상황에서, 비로소 야곱은 기도하기 시작한다. 먼저 야곱은 하나님에게 감사로 고백한다.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언제나 신실하시며, 또한 자기를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는 것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겸손하게 인정한다(10절 참조, 출34:6).
역설적인 표현으로서, 하나님이 자기를 매우 형통하게 하셨기 때문에, 야곱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두 떼로 나눌 수 있다고 시인한다(10절).
여기서 또다시 '두 군대 (진영)'의 모티프가 언급된다(참조, 1~2절). 하나님 여호와여 (9절).
야곱은 이제 처음으로 하나님을 '여호와'라는 특별한 호칭으로 부른다
이유(참조 2:4에 대한 해설).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12절).
창세기에서 이 하나님의 약속이 야곱에게 언제 주어졌는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벧엘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28:14. 참조, 13:16)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32:9-12 >
'말씀묵상'을 통해 나의 주권을 내려놓겠나이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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